지난 10일 동작구 대방동 기상청에서 있었던 기상청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해묵은 문제들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라이다 장비 납품 비리, 기상항공기 납품 비리였다. 이 문제는 2년 전에 시작됐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 문제는 ‘도마에 오르기만’ 했다. 기업총수 증인문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이 사건을 질타하는 국회의원들의 면면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상청장은 지난 10일 기상청 국감에서 “1심에서 패했는데 항소심에서 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의 질문에 “이길 것”이라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 말을 할 때 기상청장의 얼굴에는 구름 한 점 끼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1억원이 넘는 변호사 수임비용은 전액 국민들의 세금으로 처리될 것이니까 말이다.
당당했던 기상청장의 얼굴에서 또 다른 해묵은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87년 태풍 셀마였다. 태풍 셀마는 7월 7일 괌 동쪽 해상에서 느린 속도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 때문에 태풍으로 격상되지는 못했고 셀마라는 이름도 없었다. 셀마라는 이름이 붙은 건 이틀이나 지난 9일에서였다. 셀마의 진행방향도 우리와는 한참 떨어진 필리핀 루손 섬 동쪽으로 직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셀마가 갑자기 90도로 방향을 꺾었다. 2003년에 태풍 매미가 상륙하기 전까지 최대풍속의 기록을 남긴 “초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반도에 상륙하기 하루 전 7월 14일. 기상청은 태풍이 일본 큐슈지방으로 향할 것으로 봤다. 인근 국가에서 모두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 정 반대였다. 당시 기상청은 태풍이 한반도를 빗겨갈 것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결국, 태풍은 한반도에 상륙했고 이에 전혀 대비하지 못해 279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1,029억2,800만원의 재산피해와 1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후 기상청은 “태풍 셀마는 대한해협을 지나 동해로 빠져나갔다”고 태풍의 이동 경로를 거짓으로 발표했다가 기상청 내에서 자체 발간되는 ‘기상월보’를 통해 태풍 경로가 조작되었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이 모든 재난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간단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형인 기상청 납품 비리 사건 역시 “잘못했으니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말 한 마디면 끝났을 문제다. 기상청의 우격다짐 항소심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시간’과 ‘사람’이다. 이렇게 소송을 끌고 있는 사이에 제대로 된 라이다 설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항공기를 이용하는 국민들에게 제공돼야 할 ‘최대한의 안전’은 뒤로 미뤄지고 있다.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의 어떤 한 사람이 그 책임을 헌신짝처럼 쉽게 버리거나, 아집을 부려 주변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때로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삼풍백화점이 그랬고, 대구 지하철이 그랬으며, 세월호의 선장이 그러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들이 책임을 져야하는 곳에 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상청 장비 납품 비리는 재판 결과에 따라 어떻게든 매듭지어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있다. 장비를 들여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을 관측하기 위한 장비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 장비를 보고, 읽고, 해석하는 건 모두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 기상청을 주목하고, 태풍 셀마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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